1984년 3월 15일의 신주쿠 루이도. 오자키의 역사적인 데뷔 라이브 장소.
동시에 오자키가 중퇴한 아오야마 고교의 졸업식이기도 했지. 의도적으로 그는 이날을 공연일자루다가 잡은거거든.
오자키의 말처럼, 획일화된 제도안에서 순응하지 못한 나같은 인간도 성공할수 있다는걸 보여주고 싶어서... 포스터에는 '졸업 축하!' 라는 다분히 비꼬는 문구까지 적어놨었구.
오자키의 전국 투어는 그때까지 우리가 겪어왔던 여타 가수들과는 확실히 달랐던, 마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의 좌충우돌의 연속이었소. 히로시마에서는 음향이 생각했던 것만큼 안나오는데 열받아 기타를 부수지를 않나, 히비야에서는 조명용 트레일러에서 뛰어내려 왼발 골절.
오카야마에서는 관객들의 매너에 격분해 노래하던 도중 무대에서 내려와 공연을 중단시키는 등... 머 어케보면 이런점도 기존 제도권 음악인과 차별을 두는 신선함이었지만.
소포모아 징크스가 걸리는 뮤지션은, 그 첫 아루밤이 아무리 훌륭했다고 해도 결국 그 순간만 반짝하는 사진기 플래쉬랑 다를게 없는 거잖아. 하지만 오자키는 그런 의미없는 혁명가가 아니었지.
오히려 1집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아버린 回歸線음반을, 1개월간의 뉴욕 여행을 마치고 들고 나온거야. 원룸 맨션이 있는 사카노시타에 보인 소시민의 거리에서 나와, 어질러진 까페의 탁자위에서 롹큰롤에 몸을 흔들고... 싸구려 딴스홀에서 만난 여자와 어울려 술에 취한 밤을 보내며...
진정한 자신에 다다르기 위해 지배에의 졸업을 꿈꿨지만... 사실은 네가 말한거처럼 돈이 중요한지 꿈이 중요한지 모르게 살아온 삶을 후회해서... 사랑하는 모두에게 노래한다는...
난 빗속을 걸으며 장미장사한다는 시적인 표현을 좔좔 읊지도, 저년이 나 안만나줘서 슬퍼죽겠다는 철없는 야그도 X. 당시의 방황하는 우리 청춘의 모습을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반영시킨 컨셉 아루밤이었어.
특히 자신의 학창시절의 경험을 그대로 나타낸, 그의 명곡 卒業의 정직한 파괴력은 많은 젊은이들의 인생에 영향을 줬었고... 전설은 단발성이 아닌, 피라미드형 구조로 계속 쌓여지게 된거였지. 84년 초겨울. "학교 때려칠려면 나 죽이고 나서 가라" 라는 모친을 뿌리치고 자퇴서를 낸뒤, 친구집에서 퇴학기념 파뤼를 열고 町の風景를 울면서 불렀다던 문제아는 어느새 청춘의 대변자로 불리게 됬어.
그렇지만... 아무리 이때 인생의 동반자가 될 시게미(繁美)를 만났고 壞れた扉から아루밤으로 연속적인 히트를 했다해도, 그의 몸과 마음은 이때부터 조금씩 망가지고 있었던걸...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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