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데열전 메인이다에 올려주세욤' 수라들의 요청을 오래전부터 받아왔으면서도, 어째 손이 쉽게 안가던거슨, 넘흐 잘알려진 뮤지션이니까, 캅까지 굳이 글쓸필요 있겠냐 싶어서였3.
그러나 한국내 커뮤니티를 돌아보면서, ‘그래도 써봐야겠군하’ 하는 결론에 도달했음.
물론 괜찮은 내용도 많았지만, 상당수의 개소리, 헛소리, 뻘소리. (미친. 과로사는 무슨 과로사야)
지나친 신격화. (부스 마유코를 미소녀로 그려놓은, 붐베에 올린 만화가 있지를 않나)
거기에 폄하화. (그렇게까지 기타 병신 아니거등? 그리고 도대체 어딜봐서 똥싸고 똥도 안닦는 파타가 한수 위라는 소리하셈?)
가장 잘알려진 것에 가장 객관이 필요한거요. 사실보다 소녀적 감성으로, 한 뮤지션의 일생을 니네 입맛대로 이리굴리고 저리굴리고 하는 꼴. 더이상은 못봐주겠다.
본명 마쯔모토 히데토(松本秀人). 1964년 카나가와현 요코스카시 출신.
어디서나 쉽게 볼수있는 뚱뚱한 소년이었다고. 내성적이고 조용했으며, 소학교 졸업 문집에서 ‘장래의 꿈은 의사가 되어, 단념한 환자를 살리고싶다’ 라고 쓴, 소년 시대의 그를 알고있는 사람에게는, 미래에 롹커가 될거라 상상을 하지못했다능. 교육열 높은 가정이었어서, 매일밤 학원에 다녔고 검도 6년 수련. 미국에서의 홈스테이도 경험했다더군.
(가난해서 도시락도 못싸가지고 다닌집 애가, 홈스테이도 가는구나. 왜? 그런 환경에서도 뮤지션이 된 히데에의 동정심 유발이니?)
이지메를 당하던 중학생 히데를, 다시 태어나게 해준거슨 KISS의 ALIVE레코드. 그 일렉트릭 쇼크에 롹에 눈뜬 히데는, THE CLASH부터 아이언 메이든, BOW WOW까지의 다양한 롹을 접하며 완전한 ‘롹 소년’ 이 되어버렸어.
(유명한 사진일듯 ㄲㄲ)
특히나 존경한 뮤지션은 BOW WOW의 야마모토 쿄지 센세. 휀클럽에도 가입한데다, 모킹버드를 입수하게된 계기도, “BOW WOW의 사이토 미츠히로(기타)씨가 가지고 있었으니까”였어서리.
처음으로 접한 기타는, 할머니가 요코스카 기지의 노천 시장에서 사다준, 깁슨 내추럴 칼라 디럭스 모델.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깁슨이라는 고급품에, 옆학교나, 친구의 친구도 집에 기타를 보러올만큼의 화제였대. 정작 기념해야할 그 첫기타는 없어져버렸다더라 ㅎㅎ.
고교에 진학했으나, 학교에서는 뺀드 불가능. 불량아들의 장소 도부이타 거리에 출입하며, 고2때 친구들과 결성한 그룹이 샤베루 타이거(SABER TIGER, 1986년에 홋카이도 출신의 샤베루 타이거가 먼저 결성했음을 알고 B->V로 바뀜)인거야.
멤버 체인지를 반복하던 샤베루 타이거가 안정을 찾은건, DEMENTIA의 토키(TOKI, 베이수), 처음 만났을때, 사람들이 모세의 십계처럼 갈라져 피하는 모습을 보고, “모른척 도망치자” 생각했다고 하니까, “너도 만만치 않았거든?” 일화의 원 데드 와이어 보칼 쿄(KYO). 그리고 도람스의 국지씨(TETSU, 역시 데드 와이어)가입에서부터였소.
(국지씨 가입 에피소드는 ㄷㄷㄷ.
부재중이었기에, 국지씨 어머니한테 전언을 부탁. 국지씨는 “마쯔모토씨라는 사람이, 함께 뺀드하지 않을래효?” 전해달라더라 말만 듣고 무시했으나, 샤베루 타이거에 가입한다는 소문이 어느새 쫙 퍼져서 리더 타이지와 대싸움.
결국 탈퇴후 샤베루 타이거에 들어가게 된거라서, 한때 히데와 타이지의 사이는 캐 서먹서먹했었당)
어디까지나 당시의 샤베루 타이거는, 미완의 대기소리조차 못듣는, 모래알보다 흔한 자파메탈그룹에 불과했었다는게야. 정식 음반한장 못내고, 엑수(X), 디멘시아와 함께 ‘관동 3대 쓰레기 뺀드’, “니네가 메쟈 데뷔한다면 내손에 장을 지진다‘ 오명마저 듣던.
그래도 요코스카 바닥에서는 정력적으로 활동해나갔으나, 팀 붕괴는 곧바로.
기타리스트 렘(REM)이 어느날 라이브를 땡땡이쳤는데, 뒤에서 로디가 대신 연주한거얌. (한마디로 현재 각노인 사단의 유같은 경우)
원래부터 렘의 기타 플레이를 안좋아한 국지씨가, ‘저색키 예전에도 저랬던거 아니야?’ 의문을 갖고 탈퇴.
다른 멤버들은 현 라인업이 최고였음을 자부했어서리, 새 드러머 보충은 하지않은채, 1987년 1월 28일의 메구로 로쿠메이칸의 라이브를 끗으로 샤베루는 해산했당.
자자. 여기서 또하나의 잘못알려진 진실 판독.
음악을 때려치고, 가업인 미용사가 되겠다고 말한 히데를, 엑수에 들어오도록 권유한 그붕의 멋진 파인 플레이? 그거 개구라야.
뺀드를 그만두겠다는거지 음악을 그만두겠다는 말은 아니었고, 해산후에도 “음악을 그만두지는 않을거야” 말했다는 국지씨와 쿄의 증언(롹킨에프 1998년 11월호중에서).
코붕이 우상화도 아주 가지가지 해라.
한동안은 명함이나 문자를 ex.SAVER TIGER HIDE(국지씨와 쿄도 마찬가지)이름으로 교환한 히데. “언제나 가슴을 펼수 있고, 자랑스러운 뺀드였어요”. 그는 이미 이때부터, 자신에게 후회가 없는 인생을 보내온 사람이었던거야.
(ㄱ ㅖ ㅅ ㅗ 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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