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尾崎豊6

오자키 유타카 - 僕が僕であるために(내가 나로 있기 위해서) 心すれちがう悲しい生き樣に ため息もらしていた 마음먹은것관 다른 슬픈 삶 때문에, 한숨을 내쉬고 있었어 だけど この目に映る この街で僕はずっと 生きてゆかなければ 하지만 이 눈에 비치는 이 거리에서 나는 계속 살아나가야 해 人を傷つける事に目を伏せるけど 사람을 상처 입히는 일에 시선을 피하면서 優しさを口にすれば人は皆傷ついてゆく 다정한 말을 하게 되면 사람들은 모두 상처를 입게 되지 僕が僕であるために勝ち續けなきゃならない 내가 나로 있기 위해서는 계속 이겨나가야만 해 正しいものは何なのか それがこの胸に解るまで 올바른 게 무엇인지, 이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僕は街にのまれて 少し心許しながら 나는 거리에 휩쓸려, 조금씩 마음을 허락하며 この冷たい街の風に歌い續けてる 이 차가운 거리의 바람에 노래를 계속하고 있어 .. 2013. 8. 17.
오자키 유타카 열전 5편 ‘1992년 4월 25일은 꿈이었던가 현실이었던가... 그날 내가 할수 있었던 것은 그저... 오자키의 음반을 틀어놓고, 밤새도록 울면서 술을 마셨던게 전부였었지... - 깃카와 코지(뮤지션)‘ 24일 금요일 밤. 고라쿠엔에서의 파티에 초대받은 오자키 부부. 저녁 10시경에, 친구와 술한잔 더하고 들어가겠다면서 와이프를 먼저 귀가시킨 오자키는 다음날 아침. 아다치구 센쥬카와라쬬의 고미네 다다카츠씨집 마당에 쓰러져서 발견되었다네. (오자키 휀들의 성지... 집주인 고미네씨는 이곳을 오자키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개방시켜놨어) 극도로 병원을 싫어하는 성격이었기에, 집에서 안정을 취하던 그는 급격히 호흡곤란을 일으키며 정신을 잃었고... 이송된 병원의 집중치료실에서 오후 12시 6분에 사망. 이슬비가 내리던 4월.. 2009. 1. 21.
오자키 유타카 열전 4편 88년 7월 7일. 인기 음악프로 ‘더 베스트 텐’ 에 출연했던 오자키는, 각성제 복용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것에 대해 사죄. ‘오자키 유타카입니다. 대단히 걱정을 끼쳤습니다. 앞으로는 20대의 지도를 그려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몇초 정도의 메세지였지만, 온화한 표정. 약물에 의지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전해져왔지... 구치소에서 풀려났을때, 그 앞에서 存在를 울면서 합창해줬던 휀들을 더는 실망시키지 않겠다는듯. 약은 끊었다. 다음해 7월 24일에는 아들 히로야군도 태어났구. 이후 싱그루들과 2장조의 다섯번째 아루밤 誕生의 줄줄이 비엔나 히트... 월간 카도카와에서 장편소설 黃昏ゆく街で를 연재하며 작가로서의 명성도 쌓았고... 단편적으로는 ‘천실장급으로 행복에 겨우신 냥반이 되셨군하’ 하겠지만,.. 2009. 1. 21.
오자키 유타카 열전 3편 육체적으로 오자키를 그렇게까지 힘들게했던 존재는 술과 담배, 그리고 뉴욕 생활부터 조금씩 접한 각성제였음. 하지만 다른면에서 본다면, 이것들의 과용은 정신적인 고통을 잊게하기 위함이라고도 하겠지. 그때까지의 오자키에게 쵝오의 스트레스 원인은 SONY레코드사 개색히들이었소. 소니한테야 청춘의 대변자건 나발이건 장사 잘되는 넘이 더 귀여운 사람일뿐이지 뭘.-0- 이런 악덕 포주같은 놈들한테 영웅은 돈벌어오라고 강요받았어. 그게 오자키가 9개월간의 뉴욕 잠적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였던거다. 칩거를 끝내고 그해 연말에 귀국. 87년 새로운 소속사 MOTHER & CHILDREN으로 이적해서 투어 스타트. 뉴 싱그루 核(CORE)로 여전한 환호를 받았지만... 오자키의 죽음에까지 연관되었다는, 소니의 무시무시한 .. 2009. 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