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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일본록디비보기 - 메인이다24

타이지 열전 4부 여동생 마사요(MASAYO)등과 오또카제(音風)를 결성해서, 2003년 12월 28일 메구로 로쿠메이칸의 무대로 컴백하기까지 타이지는 알콜 의존증. 속칭 알콜 중독이었다고 한다. 수전증 때문에 악기를 연주하지도 못했고, 간경화 증세, 뇌경색으로 인한 언어 장애, 환각과 망상의 경험... 동맥을 끊어 또한번의 자살 기도... 나약해진 한 인간이 얼마까지 비참해질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상황이었으나, 여동생과 베이시스트 곤(GON)의 도움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며 갱생의 길로 돌아왔다고 오또카제의 홈피에서 고백하더라. 곤이 건강 문제로 탈퇴했지만, D.T.R때의 동료 후지모토 타이지의 가입으로, 다시 기타리스트에서 베이시스트로서의 보직 변경. 그리고 6월의 미니 아루밤 준비. 그러나 불행은 그를 아직은 놓아주지 .. 2009. 1. 21.
타이지 열전 3부 빠다 냄새나는 아메리칸 하드롹 스탈의 뺀드를 만들고 싶은 타이지의 야심은, D.T.R(Dirty Trashroad)로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어. 그룹 구성에서, 자기를 솔로로 꼬득인 Joe-Erk의 팔색조 보칼 타케우치 미츠오(사실 그도 타이지를 통해 더큰 인지도를 얻어보려는 속셈이 있었지)에, DANCER출신의, 실력만큼의 평가는 받지 못하던 야인 기타리스트 후지모토 타이지. 일본 블루스 기타의 거물 이찌로의 세션까지... 당시의 인기빨로 인해, 메쟈 레코드사는 서로 계약하려고 난리였다니까. (ANTHEM의 시미즈 아키오도 끌어들이려다가, 시미즈가 SHY BLUE를 준비중이었어서 무산됬다는... 이게 성사됬으면 일본 롹뺀드 사상 최강의 투톱중 하나가 되지 않았을까나 헐헐) 94년 3월부터 한달간 LA에서.. 2009. 1. 21.
타이지 열전 2부 고기 황씨(AKIRA TAKASAKI)의 발걸음은 빠르고 정확했었다. 엑수의 도쿄돔이 끝나자마자 타이지를 직접 찾아가 설득한 끝에, 불과 1주일만에 LOUDNESS의 레코딩 멤버로 참가시킨 거니까. 그런 잽쌈이 가능했던 것은, 타이지가 이미 엑수때부터 고기 황씨와 친분을 닦아온 사이였었고... 타의로 인해 쫒겨난거라, 마땅한 계획이 없는 얼떨떨한 상태라서였기도 했겠으나... 무엇보다 어린 시절부터의 우상의 권유였기 때문이 아닐까나. 필사적으로 라우드니스의 음악을 카피해왔었다는 그의 고교 시대를 생각해보라구. 손에 염증이 생기도록 빡세게 베이수를 치는 스케줄이었지만, 하루하루가 즐겁고 꿈과 같은 나날들이었다고 그는 회상하고 있었음. 92년 2월 10일. 그 시점까지는 서포트였던 타이지의 정식 가입이 워너저.. 2009. 1. 21.
타이지 열전 1부 디비보기를 통해 이런저런 내용들 쎄워갔지만, 이번이 가장 머리 회전이 까다롭지 않았나 싶어. 타이지(TAIJI)의 이름을 일본롹좀 듣는 인간이라면 당빠 모를리가 없으니까. 근데 글을 써가면서 새삼 느낀 낭패가 있으니... 이렇게 일본 롹계에서 유명하고, 언제나 '즈파 베이시스트' 라는 말이 따라다니는 뮤지션이, 어째 한국에서는 오로지 엑수 저팬으로 연계해서 거론될 수밖에 없냐는게다. 또 웬놈의 헛소리는 그렇게도 많아? -0- 타이지를 말하려면, 지금까지의 이력서를 좔좔 읊어야한다는 것은 당근 아니지만, 햇수로든, 음악적인 비중으로든, 엑수에서의 영향력 이상이라고도 할만한 LOUDNESS나 D.T.R시절의 최소한의 상황 정도는 알아주는 것이, 한 뮤지션에 대한 예우가 아닐까나. (뺀드 해산후 지 솔로 낸다.. 2009. 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