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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일본록디비보기 - 메인이다24

오자키 유타카 열전 4편 88년 7월 7일. 인기 음악프로 ‘더 베스트 텐’ 에 출연했던 오자키는, 각성제 복용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것에 대해 사죄. ‘오자키 유타카입니다. 대단히 걱정을 끼쳤습니다. 앞으로는 20대의 지도를 그려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몇초 정도의 메세지였지만, 온화한 표정. 약물에 의지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전해져왔지... 구치소에서 풀려났을때, 그 앞에서 存在를 울면서 합창해줬던 휀들을 더는 실망시키지 않겠다는듯. 약은 끊었다. 다음해 7월 24일에는 아들 히로야군도 태어났구. 이후 싱그루들과 2장조의 다섯번째 아루밤 誕生의 줄줄이 비엔나 히트... 월간 카도카와에서 장편소설 黃昏ゆく街で를 연재하며 작가로서의 명성도 쌓았고... 단편적으로는 ‘천실장급으로 행복에 겨우신 냥반이 되셨군하’ 하겠지만,.. 2009. 1. 21.
오자키 유타카 열전 3편 육체적으로 오자키를 그렇게까지 힘들게했던 존재는 술과 담배, 그리고 뉴욕 생활부터 조금씩 접한 각성제였음. 하지만 다른면에서 본다면, 이것들의 과용은 정신적인 고통을 잊게하기 위함이라고도 하겠지. 그때까지의 오자키에게 쵝오의 스트레스 원인은 SONY레코드사 개색히들이었소. 소니한테야 청춘의 대변자건 나발이건 장사 잘되는 넘이 더 귀여운 사람일뿐이지 뭘.-0- 이런 악덕 포주같은 놈들한테 영웅은 돈벌어오라고 강요받았어. 그게 오자키가 9개월간의 뉴욕 잠적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였던거다. 칩거를 끝내고 그해 연말에 귀국. 87년 새로운 소속사 MOTHER & CHILDREN으로 이적해서 투어 스타트. 뉴 싱그루 核(CORE)로 여전한 환호를 받았지만... 오자키의 죽음에까지 연관되었다는, 소니의 무시무시한 .. 2009. 1. 21.
오자키 유타카 열전 2편 1984년 3월 15일의 신주쿠 루이도. 오자키의 역사적인 데뷔 라이브 장소. 동시에 오자키가 중퇴한 아오야마 고교의 졸업식이기도 했지. 의도적으로 그는 이날을 공연일자루다가 잡은거거든. 오자키의 말처럼, 획일화된 제도안에서 순응하지 못한 나같은 인간도 성공할수 있다는걸 보여주고 싶어서... 포스터에는 '졸업 축하!' 라는 다분히 비꼬는 문구까지 적어놨었구. 오자키의 전국 투어는 그때까지 우리가 겪어왔던 여타 가수들과는 확실히 달랐던, 마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의 좌충우돌의 연속이었소. 히로시마에서는 음향이 생각했던 것만큼 안나오는데 열받아 기타를 부수지를 않나, 히비야에서는 조명용 트레일러에서 뛰어내려 왼발 골절. 오카야마에서는 관객들의 매너에 격분해 노래하던 도중 무대에서 내려와 공연을 중단.. 2009. 1. 21.
오자키 유타카 열전 1편 한국와서 어떤 일본음악 듣는애들 말 들어보면 씨바 내참 기가차서... 개나 햄스터나 다 ‘영웅’ 이래. 음악에 있어서 영웅을 말한다는건, 특정 마니아에 한정되지 않은 사랑... 활동 시기동안 대중에게 끼친 꾸준한 영향력... 음악적으로도 한 획을 그은... 머 이런게 그 조건이 아니겠냐구. 오자키 유타카(尾崎豊)... 매년 기일인 4월 25일을 맞춰 방송사에서는 특집 프로그램을 제작...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 등의 설문조사에는 항상 최고 순위. 그의 이름을 일본의 30대층은 모르는 사람이 없고 오자키를 좋아한다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친구가 될수 있으며, 장르를 초월한 좀망 많은 뮤지션이 오자키의 아루밤에 영향을 받았다고 침을 튀기며 그리움을 표시... 무슨 공식인것처럼 그의 노래를 들으며, 불안한 .. 2009. 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