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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일본록디비보기 - 메인이다24

일본 롹커들의 실전능력 PART I ‘개시키 사마’, ‘Xackt상’ 등등이라면 뭐든 잘났다는 특이한 주장을 펴는 종족 빠순몹. 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뮤지션이라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싸움도 무슨 효도르 급으로 착각하거나 포장하는 만행을 저지르는데... 선유꿀이나 퍼드셈. 그런 좆병신이 아닌, 음악계에서 알려진 진정한 파이터들을 소개하거나, 과대평가의 껍데기를 벗기는 즐거운 시간을 마련했소 캬하하하하. (‘진구지 소우다’ 는 현역 뮤지션이라기 보다는 격투가에 가깝기에 제외) 히데키(榮喜, 원 SIAM SHADE, 현 DETROX) :실전을 겸비한 격투기 마니아로 알려져있음. 학창시절부터 두목이었으며, 스팀돌면 야쿠자 아들내미든 같은 팀 동료든 밟아버리는 성격의 소유자. 기본 펀치 측정결과가 타이슨의 180키로가 나왔다면 말다했지. ACID.. 2009. 1. 21.
영삼 아자씨(坂本英三)의 직업들 안쎔(ANTHEM)의 ‘혼의 외침 보칼’, ‘젊은 옵하’ 영삼 아자씨. 일신상의 사정에 의해서라는 1987년의 첫 탈퇴는 사실, “다른 멤버의 텐션에 따라가지 못한다 느껴서, 그런 정신상태로 뺀드의 프론트에 서서 노래한다는건, 모두에게 걱정을 끼치게 되는거니까” 라는 이유에서였음. 니혼대학 문리학부 사회학과까지 중퇴하면서 활약했던 안쎔이었는데 키잉. 웬만한 수라들은, 이시절의 영삼 아자씨하면 ‘택시 운전수’ 를 떠올릴텐데, 그건 이냥반이 거쳐온 직업군중 하나였을뿐. 안경점 점원 :87년 10월. 머리를 자르고 ‘메가네 드럭’ 정식 입사. 연수생으로부터 정사원이 될때의 시험도, 한문제만 틀린 96점의 톱이었다나. 원래, 눈이 나빠서 시력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던 영삼 아자씨였고, 원래 접객하는걸 좋아했어서.. 2009. 1. 21.
히데(hide, 1964~1998)열전 Part 9 상업적인 움직임은 세상살아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존재하고, 굳이 나쁘게만 볼거슨 아니야. 흙파먹고 살수는 없잖아. 근데 그것도 정도껏. 상도의라는게 있다. 더구나 친동생과 친구였다는 놈이... 롹역사상 유래가 없는 경우라구. (보면 쳐토할것같은 두놈 면상) 히데 사망이후, 돼지의 행동은 형의 유지를 잇겠다가 아닌, ‘어케든 형 팔아서 돈을 울거 처먹겠다’ 였음. 설마 친동생이 그랬겠냐고? 지금까지 모습보면 답이 딱 나오는데? 부모님이 히데 사후 상속받은 유산은, 예금과 저금 2억 8052만엔. 그가 만든 악곡의 저작권 전부. 그리고 토지 등등이었소. 그걸 모두 가로챈 히로시. 그러나 HEADWAX오거네이숀(히데가 생전에 설립한 회사로, 히로시가 사장 취임)의 방만한 경영, 무리한 부동산 투자로 인해서, 예.. 2009. 1. 21.
히데(hide, 1964~1998)열전 Part 8 모짜르트의 최후의 ‘레퀴엠’. 미완성으로 끝난 이곡을 제자가 완성시켜 발표했지만, 전반부와 후반부의 차이는 확실하게 눈에 띄어. 이게 천재와 凡人의 어쩔수없는 재능인게다. 그것은 히데의 유작이 되어버린 Ja, Zoo(걸리버 여행기의 ‘야후’ 에서 유래된 타이틀)와도 맞물린다. 테크노 정크와 롹 기타의 융합. 거기에 익사이팅한 실험성은 중간중간에서 왕꿈틀거리는, HIDE YOUR FACE시대로 다시 돌아간 도전의 의지적 아루밤을 만들겠다는 히데의 호언장담은, 그의 죽음으로 인해 모든게 망가져버렸3. 12~13곡정도로 예정했던 야주에서 완성된 트랙은 단 6곡. 심지어 コギャル나 ZOMBIE‘S ROCK같은 노래는 보칼조차 제대로 녹음안됬었어서, 그나마 남은 4곡을 스프레드 비버가 작업해서 내놓은거셈. (コギ.. 2009. 1. 21.